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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게 진실일까?

코닥의 역사, 흥망성쇠

 

 

 

<코닥'KODAK'의 설립자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

 

조지 이스트먼은 1854년 7월 2일 뉴욕 북부 유티카에서 남서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워터빌 마을에서 셋째로 태어난다. 다섯 살 때 이스트먼 아버지는 로체스터에서 이스트먼 상업 대학을 세우려고 하고 있었고 이스트먼 가족도 아버지를 따라 로체스터로 이사한다. 하지만 갑자기 이스트먼의 아버지가 죽고 대학설립은 실패했고 그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는다. 

 

이스트먼은 집의 경제문제 때문에 14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찾아 나선다. 그는 보험회사에서 심부름꾼으로 주당 3$를 받으며 첫번째 일을 시작한다. 1년후에는 다른 보험회사에 사환으로 취직해서 보험증권 정리 책임을 맡았고 보험증권을 쓰기도 한다. 수입이 주당 5$로 오르지만 그의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더 나은 보수의 일을 얻기위해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회계공부를 한다. 보험업계에서 일한지 5년후 그는 로체스터 저축은행에 하급사원으로 고용되어 기존에 받던 수입의 3배인 주당 15$를 받는다. 

 

이스트먼이 24세가 되었을때 산토도밍고로 휴가를 계획한다. 직장동료가 그에게 여행 기록을 남기자고 제안했고 그는 습식판 시절 모든 용품을 갖춘 사진 장비를 구입했다. 그당시 카메라가 전자레인지 만큼 커서 무거운 삼각대가 필요했고 사진을 찍기 전에 유리판(예전 필름)에 사진용 에멀전을 바르고 빛에 노출된 유리판이 마르기전에 현상해야 했기 때문에 텐트를 들고 다녀야 했다. 텐트에 사진을 찍고 현상하는데 필요한 화학약품, 유리탱크, 무거운 접시받침대, 물이 담긴 항아리를 보관했다. 완전한 장비는 말에 싣고 다녀야할 정도의 짐이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법을 배우는 데도 5$나 필요했다. 

 

출처: https://spartacus-educational.com/DSphotodry5E1.htm

 

 

이스트먼은 산토도밍고로 여행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에 완전히 빠져 그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영국잡지를 읽다가 사진작가들이 자신만의 젤라틴 에멀젼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에멀젼으로 코팅된 판들은 그들이 마른후에도 감도를 잃지 않아서 에멀젼을 바르고 마르기전에 찍어야 했던 이전방식과 달리 편한 시간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는 영국 학술지에서 가져온 공식으로 젤라틴 에멀전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에는 어머니 집 부엌에서 실험을 한다.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어떤 때는 아들이 너무 피곤해서 옷도 벗지 않고 스토브 옆 부엌 바닥에서 잠들곤 했다고 한다. 3년의 실험 끝에 그는 작동하는 공식을 찾아낸다. 1880년까지 그는 건판 제조법을 발명했을 뿐만아니라 많은 수의 판을 제조할 수 있는 기계에 대한 특허도 받는다. 그는 다른 사진작가들에게 건판을 만들어 팔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코닥 회사의 탄생>

1879년, 조지 이스트먼은 그의 판을 코팅하는 기계에 대한 특허를 얻기위해 그당시 사진과 비즈니스 세계의 중심지 였던 런던으로 간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미국 특허를 얻는다. 1880년 4월 이스트먼은 로체스터의 스테이트 스트리트에 있는 건물 3층을 임대하고 125$에 2마력 중고엔진을 구매해 판매용 건판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그가 훗날 회상하길 1마력으로도 충분했지만 나중에 회사가 그만큼 클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2마력 엔진을 가져왔다고 한다. 

건판 벤처사업의 성공에 큰 인상을 받은 헨리A. 스트롱(Henry A. Strong)은 이 신생기업에 돈을 투자한다. 이스트먼과 스트롱은 1881년 1월 1일에 Eastman Dry Plate Company라는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한다. 그해 말에 이스트먼은 그의 새로운 회사에 전념하기 위해 로체스터 저축은행을 그만둔다. 그는 그의 회사활동의 모든 단계를 적극적으로 관리했고 사진을 단순화하기 위한 연구에도 계속 힘을 쏟았다. 둘이서 시작한 회사는 1884년 14명의 투자자들과 함께 Eastman Dry Plate and Film Company로 바뀌었고 1889년 Eastma Company가 설립된다. 1901년 뉴욕에 Eastman Kodak company가 설립되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Eastman Kodak Company로 불린다.

 

 


<Kodak이라는 이름>

이스트먼은 짧고 발음하기 쉽고 어떤 것도 연상되지 않는 강렬한 이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K'를 양 끝에 넣고 다른 알파벳을 조합해 아무런 뜻이 없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그게 'KODAK'이다.

출처: https://1000logos.net/kodak-logo/

 

 


<코닥의 전략과 성장>

1888년 코닥은 카메라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 카메라가 대중화되지 않아 전문 계층에서만 호응을 얻는다. 그래서  코닥은 면도기를 싸게 팔고 면도날로 수익을 내는 면도기회사의 벤치마킹한다. 카메라를 싸게 팔고, 필름, 인화지, 화학제품 같은 카메라 소모품을 팔아 수익을 내는 전략을 사용하는데 그 전략으로 1976년 후반에 코닥은 미국에서 필름은 90%, 카메라는 85%의 점유율을 차지 한다. 1950년대에 카메라 시장이 카메라 바디, 렌즈, 필름 등으로 세분화 되어감에 따라 독일의 칼 자이스, 라이카, 일본의 캐논, 니콘, 팬탁스 등이 등장하면서 카메라 시장에서의 코닥의 입지가 줄어들지만 이미 '필름은 코닥'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필름사업으로 코닥은 안정적인 수입을 계속 낸다. 1969년 코닥의 최첨단 장비들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모습을 담았고 1975년에는 최초로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한다. 1990년대에는 매년 1억 대가 넘는 일회용 카메라를 판매하고, 각종 특허와 디지털기기 개발 등으로 미국 25대 기업으로 성장한다. 

 

1888년 코닥의 첫번째 카메라

 

 


<코닥의 실패>

코닥은 1975년에 디지털 카메라를 세계최초로 개발하지만 코닥의 주요 수입원인 필름 사업이 타격을 받을까봐 그 제품을 폐기처분한다. 그 후 20여년간 코닥은 새로운 기술로 변화하기 보다는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을 늦추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1998년 디지털카메라의 시장성을 인지한 일본 카메라 기업들이 보급형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하면서 필름카메라 시장은 급속도로 몰락한다. 결국 131년 역사의 코닥은 2012년 1월 19일 파산보호 신청을 한다.

 

좌: 코닥이 1975년 개발한 세계최초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 우: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 판매변화 출처: https://www.ignitionframework.com/story-of-kodak/

 


<이스트먼의 삶>

이스트먼은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독신이었던 그는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기보다는 사회에 막대한 기부를 하였고, 회사 직원들이 풍요롭게 일 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과 복지에 신경썼다. 이스트먼은 평생 1억 달러에 이르는 기부를 하였는데 절반인 5천만 달러 정도는 로체스터 대학교에 기부하였고 MIT에도 45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자신이 번 돈을 가치있는 곳에 환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1932년 이스트먼은 "내가 할 일이 이제 없다. 더 이상 살아봤자 할 일이 없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남은 재산 대부분은 이스트만 사회재단 이름으로 기부되었다.

 

 

 

 


1882년  현대식 필름의 초기형태

1883년  세계 최초 감광필름 양산 성공

1888년  카메라 판매 시작. 당시 카메라는 대중화되지 않아서 전문 계층에만 호음이 좋음

1889년  트렉시블 투명 필름 발명 생산, 에디슨과 더불어 영화 역사에 기념비적인일, 영화산업 비약적인 발전

1981년  매출 10억달러

1910년대 필름은 코닥

1932년  조지 이스트먼 77세에 자살

1930년후반  현대적인 필름 개발 성공

1950년대  카메라 바디, 렌즈, 필름으로 세분화되면 독일의 칼 자이스, 라이카와 일본의 니콘, 캐논, 펜탁스 등이 등장하며 카메라 시장 입지 줄어들지만 필름사업은 안정적 성장

1975년  휴대용디지털 카메라 최초 개발

1990년대  매년 1억대가 넘는 일회용 카메라 판매, 각종 특허 등 큰 성장으로 미국 25대 기업

1990년대말  디지털카메라 등장으로 필름 사업 내리막

2012년  파산보호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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